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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마녀사냥 이야기

by 하면다된다 2021. 12. 13.

목차

     

    현재에도 많이 쓰는 말 중에는 마녀 사냥이란 것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행해진 이 마녀사냥이 모습만 다를 뿐 현재에도 비슷한 형태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중세시대에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중세시대 마녀사냥
    중세시대 마녀사냥

    중세시대 마녀사냥은 어땠을까?

    중세시대의 유럽에서는 갖가지 재앙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전쟁과 자연재해 그리고 많은 종류의 질병들까지 유행하였습니다. 의료기술이나 평화협정이 없던 당시에는 이러한 일들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땟을까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들과 같이 정상적인 심리상태였을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4세기에 처음 일어났던 대기근은 전체 농촌의 약 30% 정도가 폐촌이 될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영양부족으로 인해 굶어죽는다던가 거지가 되어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매장한 시체를 파먹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도시에는 부모를 잃은 고아, 노인, 병자, 불구자가 매일매일 넘쳐났고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사람들은 당장 자신조차 먹고사는데 정신이 없어서 다른 이들을 돌볼 상황이 아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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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한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는데 일을 안하면 안 된다. 그렇게까지 힘들게 일을 하여도 보상이란 것은 영주의 발길질과 저주 섞인 말 뿐이었다" 이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삶의 의지를 잃고 자포자기하여 강도가 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이것이 끝이 아녔습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흑사병이 대유행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보아 무엇이 자기 자신에게 재앙과 불행을 가져오는지 그 원인을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녔을 겁니다.

     

    이 모든 재앙은 마녀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은 마녀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광적인 신념과 미신으로 인해 점점 커진 불꽃은 공포라는 기름을 붓게 되자 활활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불꽃을 끄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불꽃을 가지고 오는 마녀를 어떻게든 찾아내어 철저히 벌을 주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인 마녀를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렇게 마녀 사냥은 유럽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광기는 마녀로 의심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자백을 강요하였고 그에 따른 고문을 하였고 그 고문은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형태로 더욱더 심해졌습니다.

     

    마녀 재판

    마녀 재판의 시초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단 심문재판이 그 전신이 된다고 합니다. 가톨릭에서는 가톨릭 이외의 모든 종교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아졌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마녀는 이단자이고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가톨릭에서는 마녀를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밀고하는 것을 장려했습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그 대상이 백성이나 귀족, 상인, 성직자라고 할지라도요. 

    마녀사냥이라고 해서 여성만이 희생된 것은 아녔습니다. 남녀 할 것 없이 마녀라고 의심되는 자는 희생당했습니다. 특이한 행동, 잘 못 나온 말,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다면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못 믿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가장 친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었습니다. 부부관계나 형제관계, 부모 자식관계까지도 말이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지인의 밀고로 인해 처형된 일이 많았습니다.

    마녀 재판으로 무려 약 800만이라는 무고한 사람이 가혹한 고문을 받고 마녀라고 확정되어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녀 사냥으로 인해 사상자가 가장 많았던 나라는 순서대로 독일, 스코틀랜드, 프랑스였습니다.

     

    마녀 재판에서는 마녀로 의심받는 사람이 심판관 앞으로 불려 나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심판관이 고발문을 먼저 읽습니다. 그 내용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시체를 개구리와 뱀과 섞어 삶은 마녀의 약을 만들어 동네에 저주를 걸었다 등의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발문을 읽으면 마녀로 의심받는 사람들은 본인은 마녀가 아디나, 그런 일을 한적 없다 등의 말과 절규를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대답이었습니다. 

     

    마녀 사냥의 고문

    마녀 재판
    마녀 재판

    심문에 의해 자백을 하지 않는다면 자백을 받기 위한 방법으로 고문이 시행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옷을 벗기고 나체의 상태로 새우처럼 웅크린 형태로 매달았습니다. 고통을 더 하기 위해 발에는 무거운 물체를 매답니다. 그리고 그 몸을 뒤져서 증거를 찾아냅니다. 그 증거란 악의 증표란 각인으로 악마와의 관계 시에 만들어져서 악마에 대한 충성심을 각인시킨 거라고 합니다. 일반 멍자국이나 흉터, 사마귀 자국 등이 증거라고 채택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악마의 지문, 악마의 입술 자국이라고 하여 마녀라고 단정 짓는 유력한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만약 신체에서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증거물을 찾지 못할 시에는 강제적으로 토를 시켜 토사물을 뒤져서라도 증거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마녀를 헤엄치게 한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녀를 연못에 넣어서 헤엄을 치면 마녀로 단정 짓는 겁니다. 이게 왜 마녀의 증거가 되는가에 대해 궁금하실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마녀가 물보다 가벼운 초자연적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녀로 의심을 받고 재판에 올랐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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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의 종류

    마녀라고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철로 된 장화를 신겨서 신발과 발 사이에 쐐기를 박는 고문
    •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 뚫린 의자에 앉혀진 상태에서 의자 밑에서 촛불을 붙이는 고문
    • 물고문

    이 외에도 잔혹한 고문들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고문들을 받다 보면 사람은 그 당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없었던 일이라도 자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백을 했다 하더라도 목숨을 지킬 순 없었습니다.

     

    화형

    자백을 했다면 마녀로 간주하여 화형을 시킵니다. 이 화형에서 불을 피우는 사람은 명예로운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장작에 불이 붙고 순식간에 화염이 거대하게 타오릅니다. 수형자의 비명이 온 세상을 덮고 곧 숨을 거두게 됩니다.

    중세시대에는 마녀를 찾아내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녀로 고발당하지 않기 위해 매일을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마녀로 의심받고 처형을 당하게 되면 처형당한 사람의 재산을 전부 교회나 재판관이 몰수합니다. 따라서 마녀 재판이 교회의 재산을 늘리는 가장 효율적인 수입원이었습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재산을 증식하는데 재미를 들인 이단 심문 법정이 본래의 역할을 잊어버리고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무죄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처형하였습니다.

     

    마녀사냥의 끝

    1755년 독일에서의 마녀 재판을 마지막으로 마냐 사냥이 끝이 났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합리주의 시대에 이르러서 미신과 광신주의에 대한 구시대적 사고를 씻어버렸습니다. 

     

    공식적인 마녀 재판은 이때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비슷한 형태의 마녀 사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녀 사냥의 정말 추악한 점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의심의 씨앗을 만들어 내고 최소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의식마저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일상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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